지켜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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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에서...

난 전철을 타고 출퇴근 한다. 미국에 전철타고 commute 하는 직장인이 고작 4% 정도라던데, 대도시에서 일하다보니 그 4%에 속하게 됬다.

한국과 분위기는 다르지만, 시카고 전철에도 구걸하는 거지들이 있다. 뉴욕과 더불어 24시간 대중교통이 운행되는 시카고 답게 "어제부터 전철에서 못내리고 있다. 배도 고프고 차비도 필요하다" 라고 말하며 구걸하는 사람들도 있고, 홈리스인데 돈이 필요하다고 하는 사람, 돈이 아니라 먹을 걸 구걸하는 사람등을 자주는 아니지만 만날 수 있다.

지난 주, 어느 때 처럼 뭔가를 읽으며 전철을 타고 학교로 가는데 누군가 소리를 지른다.  "Does anybody have food?"

다른 때 처럼 그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하는 데 내려야 할 정류장이 다가왔다. 2 정거장 정도 남았는데 역간이 짧아 물건들을 가방에 넣고 있었다. 근데 또 어디선가 서럽게 우는 소리가 들린다. 슬픈 울음이 아니라, 서러운 울음이었다. 고개를 들고 보니 너무나도 선하게 생긴, 평생 누군가를 미워한적도 없을 것만 같이 생긴 흑인 할아버지가 고개를 숙이고 울고 있다.

나이 40이 지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던가? 옆모습만으로도 그 분이 얼마나 선하게 그동안 살아왔는지가 보였다. 왠지 저 아저씨에겐 이렇게 전철에서 음식을 구걸한게 처음인 거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전철에서 구걸하는 사람들 대부분 솔직히 험하고 무서운 느낌이 들어 항상 눈을 피하곤 했다. 몇 달전, 전철에서 구걸하던 사람에게 원하던 걸 주지 않자 손에 들고 있던 아이폰을 들고 도망가 버렸다는 동료교수의 이야기를 듣고 난후, 더더욱 그들을 피하게 됬다.

근데 지난 주에 본 할아버지의 모습은... 정말 인자한 동네 할아버지 모습이었다.  아니, 인자함을 넘어선, 바르게 살아온 인생의 흔적이 선한 모습으로 새겨진 주름을 통해 나타났다. 그리고 서럽듯 우는 모습에서 지금 너무 부끄럽고 비참함을 느끼고 있다는 게 전해졌다. 내려야 할 역은 다가오고, 그 할아버지는 아무에게도 음식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마침 가방에 바나나가 있어서 할아버지에게 주니 받자마자 나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시더니 허겁지겁 드신다. 내리면서 슬쩍 보니 벌써 다 드셨다.

내리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먹먹해 졌다. 차라리 돈을 드렸어야 했나? 돈이 아니라 음식을 원하셨으니 가지고 있는 바나나가 나았으려나? 시간이 좀더 있었으면 둘다 드렸을 텐데...

그리고 그 할아버지에게 하나님은 어디계신걸까? 그 또래 흑인 할아버지들은 기독교 인이 많다. 그리고 그 할아버지 얼굴에서, 크리스천이 분명할 거 같은, 어떤 확신같은게 들었다. 하나님을 알던 모르던, 분명히 많은 기도를 했을 거 같은 느낌.. 그런데 왜 하나님은 그 할아버지가 전철에서 저렇게 서럽게 울 수 밖에 없는 상황까지 가게 하신걸까? 내 곁에는 계신 하나님이, 왜 저 할아버지는 안 돌봐 주신거지?

이게 벌써 지난 주 일이고, 이번주도 벌써 수요일까지 왔다. 그런데 전철을 탈때마다 마치 자동플레이어처럼, 그 할아버지의 얼굴이 보이는 거 같고 우는 소리가 들리는 거 같다. 기도가 절로 나온다. 지금까지 제 기도 잘 들어주신 하나님, 제발 그 할아버지 좀 도와주세요... 제발 좀 도와주세요...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요즘은 너무 부끄럽고 죄송하고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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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 대한 욕구는 삶에 대한 애정이 있을 때만 가능한 것... 남기고 싶은 순간들이 많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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