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학원에서 아이들도 가르쳐 봤고, 템플에 있을 때도 강의는 했었지만 그건 아르바이트였고 시간강사였을 뿐이었다.
이제서야 정식으로 "내 직장" 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을 한국나이 31, 이곳나이로 30에 처음으로 갖게 됬다.
친구들에 비해 늦은거지만 그래도 교수라는 직업이 원래 그런거다 보니 신입교수들 중에서도 꽤 어린 편에 속하더라.
암튼 빠르다면 빠르고 늦다면 늦은 첫직장을 갖게 된지 열흘이 지났다.
학기는 담주에 시작하지만 정식 계약은 8월 15일 부터 였고 16일부터 이틀동안 신입교수 오리엔테이션, 수요일은 우리 과 (커뮤니케이션 학과) 교수들 전체 모임이 있었으니 일한지 열흘이 된거다. (이런 것도 일이라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티 내면 안될 거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숨기기 힘들만큼, 날아갈 듯 기쁘다. 마치 내가 꼭 있어야 할 곳에 있는 듯한... 그런 기분.
2.
위키피디아에서 내가 일하는 Roosevelt University 를 찾으면 "Roosevelt University is a progressive non-profit private university with two distinct campuses in Chicago and Schaumburg." 라고 시작한다. 미국의 많은 학교들이 (특히 도시에 있는) 자신들을 진보적이라 하지만 말 뿐인 경우가 많다. Roosevelt Univ. 에 인터뷰 하러 왔을 때, 학교가 사회정의에 얼마나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지, 그걸 티칭과 연구에 접목시키려고 어떻게 노력하는지에 대한 설명 들을 때 꽤 인상적이었는데, 오리엔테이션동안의 시간들과 여러 학교사람들을 만나보니 이곳 사람들은 사회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정말로 고민하고 노력한다는 걸 알수 있었다. 이 사람들이 실천하려고 하는 사회정의는 추상적인 어떤 개념이 아닌, 학교를 운영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하는데 있어 가장 근본이 되는 중요한 축이었다. 지역사회 속에서 실천하는 사회정의 뿐 아니라, 교실안에서도 학생들의 목소리에 좀더 귀 기울이고 학생들이 이런 사회정의를 전공을 통해 실천하도록 하려는 노력들이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처음으로 참석한 교수회의도 인상적이었다. 중간에 잠깐 쉬긴 했지만 학기 첫 모임이어서 3시간 30분정도 이어진 회의였는데, 전혀 길게 느껴지질 않았다. 첫 회의여서 긴장해서였을 수도 있고 분위기 파악하느라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동안 들어왔던 정치적이고 서로 감추려 하고 파워게임의 연속인 경우가 많다던 교수회의가 아닌, 정말 사이좋은 동료들끼리 하는 회의인 거 같아서 좋았다. 또 회의 내용역시 학생들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려는 교수들의 마음들이 계속 드러나서 더 좋았었을지도...
학교에 대해 알아갈 수록, 사람들과 친해질 수록, 이곳에 대해 조금씩 배워나갈 수록, 감사한 마음, 빚진 마음이 잴 수 없을 만큼 커져 간다. 내 능력에 비해 과분한 곳에 온것만으로도 뭐라 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한데, 기대이상으로 학교가 너무좋다! 이게 꿈이 아니란게 이상할 정도로...
3.
이제 학기가 시작되면 바빠지겠지. 다들 박사공부할 때가 좋았다고, 교수로 임용되면 그때랑 비교할 수 없을만큼 바빠진다고들 하던데, 벌써 그럴 기미가 보인다 ^^
시간이 지나면 지금은 이렇게 좋아보이는 동료들 중에도 날 힘들게 하는 사람이 생길 지 모른다. 하지만 뭐 어때. 그것도 삶의 한 일부분인걸... 그런것도 entertainment 라고 생각하면 휙 넘길 수 있지 않을까? 속으로 궁시렁 궁시렁 투덜되기도 하면서...
한가득 받은 명함들이 동이나서 새 명함을 신청하고, 학교에서 임용선물이라고 준 내 책상위의 작은 화분속의 bamboo가 커질 때 즈음에는 지금처럼 모든게 새롭고 신기한 단계에서 벗어나 이곳의 생활이 내 일상으로 자리잡고 익숙해 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느끼는 이 감사함, 빚진 마음은 잊지 말아야지. 그리고 이 마음들을 모아 내가 중요하다고 믿는 것들을 본격적으로 실천해 나가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