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에서 들었는데, 어떤 작가가 그랬단다.
"작가란 정말 좋은 직업이야. 글만 안쓰면...."
교수도 정말 좋은 직업이다. 방학만 계속 된다면....
수업도 끝났고, 성적도 입력했고, 내일까지 완성해야 하는 faculty activity report 도 제출했다.
드디어 영원히 오지 않을 거 같았던 2013년 여름방학이 온 것이다.
방학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그 다음 school year 의 삶의 질이 결정된다는 걸 뼈아프게 배운 지난 3년을 생각하면, 방학을 잘 지내는 건 정말 중요하다.
여기서 방학을 잘 보낸다는 건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
학기중에 집중하기 힘든 연구에 충분한 시간을 보내는 건 기본이고, 다음학기와 그 다음 봄학기에 있을 수업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쳐있는 내 자신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추스리고 힘을 줘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학기중에는 150%의 에너지를 쓰기 때문에 방학동안의 충전은 필수!!! 써야 하는 아티클들 때문에 겨울방학, 봄방학 자체가 없었던 지난 한해였기 때문에 이번 여름방학은 그 어느때보다 감격스럽고 감사하다.
사람마다 충전하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나는
- 연구/수업과 전혀 관계없는 책을 읽고
- 연구/수업과 전혀 관계없는 영화와 다큐를 보고
- 피아노를 치고
- 음악과 라디오를 듣고
- 남편과 산책하고
- 새로운 곳을 갈 때
힘이 솟는다. 마치 꼬마자동차 붕붕이 꽃향기를 마실 때 처럼...
그래서 지금 7월달에 남편과 함께 할 시애틀 까지의 기차여행이 너무너무 기다려진다. 사실 남편이 기차여행 가지고 할 때 부터, 떠날 생각만으로도 지난 학기를 버티는데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여행은 앞으로 한달도 더 남았다. 회사원인 남편이 휴가를 오래 쓰려면 연휴를 끼고 가는게 좋기 때문에 독립기념일 연휴에 맞춰 휴가를 쓰기로 한 것이다.
그 여행을 생각만 하는 것으로도 행복해 지고 힘이 나지만, 지금 당장, 새로운 곳을 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하게 들었다.
어떡할까.. 하다가...
나의 CTA unlimited pass 가 생각났다.
이곳 대중교통 시스템중 하나인 CTA 버스와 전철을 무한대로 탈 수 있는 pass.
하지만 99%를 출퇴근 할때만 이용되는 나의 불쌍한 pass 를 이기회에 제대로 사용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시작한 전철역 투어!!!

보통 Blue line 의 Cumberland 와 Washington/Monroe/Jackson 역 정도만 왔다갔다 하는데 이번 방학때, 가능한 일주일에 한군데씩 새로운 역에 가기로 다짐한 것이다. 읽어야 하는 책들이나 아티클, 랩탑, 공책 정도만 있다면 어디든지 오피스로 만들 수 있는 직업이다 보니 새로운 곳을 다니다가 지역 도서관이나 카페등에서 일하다 오겠다는 포부로 일단 Blue Line 종점인 Forest Park 쪽으로 가기로 했다.
중간에 켜기 시작해서 내가 걸어다닌 게 다 나오진 않았지만, 암튼 대강 걸어다닌 곳은 이정도 되겠고...

우연히 발견한 Good Earth Cafe. 역에서 많이 멀지 않은 태국음식점에서 파타이랑 타이아이스티까지 먹고 배불러서 커피를 마시진 않았지만 이쁜 꽃들의 향기가 날 너무 행복하게 해 줘서, 커피 한잔 안 사고 나온게 미안할 정도였다.

사진으로 다 표현되지 않는 그 곳의 느낌,공기, 냄새... 나중에 남편과 또 가고 싶은 곳이다.
마냥 걸었던 동네길들도 너무 이뻤고...

평생 살 집을 언젠간 짓고 말겠다는 꿈을 가진 이후, 더 유심히 보게 되는 집들...
물론 이렇게 큰 집을 지을일은 없겠지만....

Google Map 을 보고 찾아간 Thomas Jefferson Wood 의 산책길은 뭔가 더 깊은 생각으로 날 끌어가는 듯 했다. 걷는동안 사람을 단 한명도 만나지 못해 살짝 무섭긴 했지만...



그리고 찾아간 내 사랑 도서관!!!
전 세계의 모든 도서관을 다 가보고 싶은 소박한 꿈이 있는 나로서는, 전철역에서 멀지 않은 이 도서관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하지만 일리노이주의 다른 도서관에 비해 시설이 별로라 솔직히 좀 실망했다.

그래도 이 곳에서 이메일 정리하고, 시애틀과 포트랜드에서 가볼만한 곳들 찾아보고...
방학계획 및 해야 할 연구들 가닥도 잡고...
나름 알차게 보낸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이 포스트도 여기서 쓰기 시작해서 집에서 완성중...)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니 저녁 6시... 왜 진작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에서 낯선 장소를 찾아볼 생각을 못했을까? 이렇게 하루만 보내도 내 속이 터질만큼 행복하고 감사하고 기쁜데...
방학하니 정말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