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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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블로 사건을 보면서
대학 다니면서 겪었던 황당한 일 중 하나.

평소에 잘 지내던 친구 하나가 어느날 갑자기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아니 뜬금없이 나에게 왜 미안하지? 의아해 하던 내가 그 친구는, 그동안 나를 미워했다고 했다.

내가 둔했던 건지 아님 그 친구가 연기를 잘 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나는 난 깜짝 놀랐고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그 친구의 대답.

재외국민으로 학교 입학해서 학교 적응도 잘하고 사람들하고도 잘 지내며 공부도 잘하는게 얄미웠단다.

난 태국에서 살다가 한국에 들어왔기 때문에 수능을 보지 않고 재외국민 특례로 대학에 들어갔다. 그런데 특례로 대학들어온 사람은 적응도 못하고 공부도 못해야 하나?

그 친구는 어릴 때 부터 외국에 나가서 사는 게 꿈이었고 고등학교 때 부터 부모님께 유학보내달라고 했는데 안된다고 하셨단다. 그럼 대학이라도 외국에서 다니게 해달라고 했더니 그것도 안된다고 하셨단다. 그래서 외국에서 살다 온 내가 괜히 얄밉고 싫었다고 한다. 게다가 (그 친구의 말에 따르면) 성격도 좋아보이고 공부도 잘 해서 내가 너무 싫었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밉다는 걸 다른 친구들에게 얘기했단다.

하지만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그게 죄라고 하셨단다. 그리고 나에게 사과하라고 하셨단다.
당시 좀 가식적이었던 난, 겉으로는 얘기해 줘서 고맙다고 했지만 솔직히 혼자 회개하고 나한테는 말 안했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살았던 곳은 선진국도 아니었고, 그 친구는 나보다 해외 여행도 많이 다녔고 (참고로 난 지금까지 유럽도 한번 못가봤다. 모든 해외 경험이 아시아와 북미지역), 나보다 훨씬 부유했다.  하지만 단순히 재외로 들어온 내가 잘 지낸다는 거에 속이 꼬였던 거다.

솔직히 타블로 사건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된건지, 누가 왜 그런 소문들을 내고 다니는지 잘 모른다. 오빠가 말해줘서 정말 심각하다는 걸 알았고 기사 몇 개 읽어보고 이미 통제가능한 수준을 넘어섰다는 걸 눈치 챈 정도...

하지만 지난 번 박재범 사건도 그렇고 이번 타블로 사건도 그렇고,
한국은 이상하게 해외에서 온 이들에게 더 잔인하다.

왜 그런걸까? 단순히 군대문제로 설명하기엔 너무 복잡해 보인다.

외국에서 온 이들에게, 한국인들은 뭔가 꼬여 있다. 그리고 그들의 성공을 깎아내리려 한다.
성공한 모습이 아니여도, 한국 밖에서 들어온 이들에게 한국은 참 힘든 나라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나라든 부유한 나라든 상관없이,
한국에서 함께 살자고 전 세계에서 모여든 이들에게
한국은 다양한 모습으로 잔인하게 이들을 숨막히게 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쫓아내려 한다.

옆에서 보기만 해도 숨막히고 답답하다.

가족이 살고있는 한국이지만,
난 한국이 전혀 그립지가 않다.


첫 직장에서의 10일...

1.
학원에서 아이들도 가르쳐 봤고, 템플에 있을 때도 강의는 했었지만 그건 아르바이트였고 시간강사였을 뿐이었다. 

이제서야 정식으로 "내 직장" 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을 한국나이 31, 이곳나이로 30에 처음으로 갖게 됬다.
친구들에 비해 늦은거지만 그래도 교수라는 직업이 원래 그런거다 보니 신입교수들 중에서도 꽤 어린 편에 속하더라.

암튼 빠르다면 빠르고 늦다면 늦은 첫직장을 갖게 된지 열흘이 지났다. 
학기는 담주에 시작하지만 정식 계약은 8월 15일 부터 였고 16일부터 이틀동안 신입교수 오리엔테이션, 수요일은 우리 과 (커뮤니케이션 학과) 교수들 전체 모임이 있었으니 일한지 열흘이 된거다. (이런 것도 일이라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티 내면 안될 거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숨기기 힘들만큼, 날아갈 듯 기쁘다. 마치 내가 꼭 있어야 할 곳에 있는 듯한... 그런 기분.

2.
위키피디아에서 내가 일하는 Roosevelt University 를 찾으면 "Roosevelt University is a progressive non-profit private university with two distinct campuses in Chicago and Schaumburg." 라고 시작한다. 미국의 많은 학교들이 (특히 도시에 있는) 자신들을 진보적이라 하지만 말 뿐인 경우가 많다. Roosevelt Univ. 에 인터뷰 하러 왔을 때, 학교가 사회정의에 얼마나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지, 그걸 티칭과 연구에 접목시키려고 어떻게 노력하는지에 대한 설명 들을 때 꽤 인상적이었는데, 오리엔테이션동안의 시간들과 여러 학교사람들을 만나보니 이곳 사람들은 사회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정말로 고민하고 노력한다는 걸 알수 있었다. 이 사람들이 실천하려고 하는 사회정의는 추상적인 어떤 개념이 아닌, 학교를 운영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하는데 있어 가장 근본이 되는 중요한 축이었다. 지역사회 속에서 실천하는 사회정의 뿐 아니라, 교실안에서도 학생들의 목소리에 좀더 귀 기울이고 학생들이 이런 사회정의를 전공을 통해 실천하도록 하려는 노력들이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처음으로 참석한 교수회의도 인상적이었다. 중간에 잠깐 쉬긴 했지만 학기 첫 모임이어서 3시간 30분정도 이어진 회의였는데, 전혀 길게 느껴지질 않았다. 첫 회의여서 긴장해서였을 수도 있고 분위기 파악하느라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동안 들어왔던 정치적이고 서로 감추려 하고 파워게임의 연속인 경우가 많다던 교수회의가 아닌, 정말 사이좋은 동료들끼리 하는 회의인 거 같아서 좋았다. 또 회의 내용역시 학생들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려는 교수들의 마음들이 계속 드러나서 더 좋았었을지도...

학교에 대해 알아갈 수록, 사람들과 친해질 수록, 이곳에 대해 조금씩 배워나갈 수록, 감사한 마음, 빚진 마음이 잴 수 없을 만큼 커져 간다. 내 능력에 비해 과분한 곳에 온것만으로도 뭐라 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한데, 기대이상으로 학교가 너무좋다! 이게 꿈이 아니란게 이상할 정도로...  

3.
이제 학기가 시작되면 바빠지겠지. 다들 박사공부할 때가 좋았다고, 교수로 임용되면 그때랑 비교할 수 없을만큼 바빠진다고들 하던데, 벌써 그럴 기미가 보인다 ^^ 
시간이 지나면 지금은 이렇게 좋아보이는 동료들 중에도 날 힘들게 하는 사람이 생길 지 모른다. 하지만 뭐 어때. 그것도 삶의 한 일부분인걸...  그런것도 entertainment 라고 생각하면 휙 넘길 수 있지 않을까? 속으로 궁시렁 궁시렁 투덜되기도 하면서...

한가득 받은 명함들이 동이나서 새 명함을 신청하고, 학교에서 임용선물이라고 준 내 책상위의 작은 화분속의 bamboo가 커질 때 즈음에는 지금처럼 모든게 새롭고 신기한 단계에서 벗어나 이곳의 생활이 내 일상으로 자리잡고 익숙해 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느끼는 이 감사함, 빚진 마음은 잊지 말아야지. 그리고 이 마음들을 모아 내가 중요하다고 믿는 것들을 본격적으로 실천해 나가야 겠다.



지금 같은 때 더더욱...
당신은 위기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고 있다는 안도감,

당신만은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 그러나 이대로 가면 당신은 실패한 수 많은 사람 중 한 명이 될 것이다
- 빌게이츠

솔직히 실패라는게 뭔지 잘 모르겠다. 원하는 직장을 안가지면 실패한건가? 인간관계?
모든 사람이 다 사회적으로 성공할 필요도 없고, 사회적인 성취가 없다고 해서 실패한 인생은 아닐거다. 모든 인생은 그 만큼의 시간을 견뎌오며 쌓아온 무언가가 있을테니...

하지만 목표의식을 가지고 긴장하며 나아가는 건 삶을 더 깊이 있게 하는 거 같다. 그런 의미에서 위기감을 갖는 건 괜찮은 듯...

지금처럼 뭔가 너무 술술 잘 풀리고 원하는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고 있으면, 신기하면서도 오히려 뭔가 갑자기 서프라이즈가 있을까봐 불안할 때도 있다. 몸은 바쁘지만, 상황은 안정적인 이런 시기에 더욱 필요한 게 위기감이 아닐까?


RSA Animate - The Secret Powers of Time




싱가폴 다녀와서...

1.
템플대학이라고 적힌 이름표를 마지막으로 목에 건 학회였다. 즉 학생신분으로서 마지막으로 참석한 학회.
그 학회에서 Top Student Paper Award 를 받았다. 음하하하! 이렇게 마무리 하게 되서 넘 좋다. (그래.. 이건 자랑이다.)

2.
논문 끝내고 한없이 쳐질 수 있는 상황에서 적절한 시기에 다녀온 학회였다. 정신없는 도중에 가야 해서 정말 가기 싫었는데, 정말 잘 다녀왔다. 미디어리터러시 학회가 아닌, 이렇게 큰 학회에서 이정도로 학자들과 활발하게 학문적인 교류를 한 적도 없었던 거 같다. 연구에 대한 열정이 불끈! 솟아올랐다. 이 마음을 잘 이어가야 할텐데...

3.
12월에 동부에서 서부로 왔고 이제 또 중부로 이사간다. 이사가는게 이젠 많이 지겹고 한곳에 정착하고 싶었다.
시카고 가게 되서 넘 행복했고 지금도 꿈만 같다.
하지만 이번에 싱가폴에서 느낀건데,
이 넓은 세상에서 다른 곳으로 갈 여지를 남겨두지않고 한곳에서 자리잡고 산다는것에 대한 아쉬움이 살짝 생겼다.
인생은 짧고 세상은 넓은데, 단순한 여행이 아닌, 이곳저곳에서 살아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3-5년정도...
모든 곳에서 살아볼 순 없지만 그래도 그 곳들을 여행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걸까? 오빠도 나도 둘다 은퇴하면 익숙한 곳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과 새로운 곳에서 여행이 아닌, 머무는 삶으로서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 서로 막 싸울 거 같다.

4.
싱가폴에 가니,
태국에서의 시간들이 자꾸 생각났다. Leanne 도 내가 여행객이 아닌, 현지인 같다고 계속 놀라와 했는데 태국에서의 내 시간이 그곳에서 현지인 처럼 보이게 한 것 같다.
사실 지난달,17년만에 부모님이 한국으로 들어오셨다. 아빠 직장때문에 온가족이 태국으로 갔던건데 이번에도 직장때문에 한국에 들어오신거다. 처음 태국 갈 때엔 3년만 살다올줄 알았는데 이렇게 오래 살 줄이야.. 정말 이번에 회사일만 아니면  두분은 20년 채우실 뻔 했다. (사실 난 두분이 20년 넘게 사실 줄 알았다.)
솔직히 그동안 오래 살았던 태국보다 여행을 한다면 차라리 딴 나라를 가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싱가폴에 가보니 태국에 다시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난 지금도 내가 청소년 시기를 미국이나 유럽같은 곳이 아닌, 태국에서 보낸 걸 정말 감사하고 있다.
그곳에서 보고 느끼고 배운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데 큰 영향을 미쳤으니까... 세상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큰 영향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외국사는 한국 교민들과 한인교회에 대한 철저한 불신도 그 때 생겼음.)
하지만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들었는데,
95년도에 여행했던 싱가폴을 2010년에 다시 가보니 정말 많이 변한 걸 보고
2015년 지나서 죽기전에 태국 한번가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았던 태국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 곳의 공기, 바람을 느껴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2015년도의 태국은 1990년대 중반에 나에게 가르쳐준것과 다른 것들을 알려줄 거 같았다. 

5. 
템플에서 만난 대만친구이자 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 에서 교수하고 있는 Leanne 과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다.
박사과정할 때와 비교해서 교수의 삶이 훨씬 더 힘들고 고달프다는 걸 다시한번 확인했고,
정신없는 삶에 치여 죽어있던 Leanne의 연애세포를 자극시키고 깨운, 엄청난 성과도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를 이곳에 할 수는 없지만, 암튼 누군가를 알아보고 좋아하게 되고 그로 인해 설레이게 되는건 정말 행복한 일인 거 같다. 그 행복을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준거 같아 엄청 뿌듯하다!

6.
싱가폴은 영어가 통하는 나라라서 혼자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과 이런저런 깊은 이야기를 할 기회가 많았는데, 그 나라의 정치상황이나 정치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들이 솔직히 많이 불편했다. 하지만 난 그 나라에 손님으로 간 여행객일 뿐이기에 그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나눴지만 내 마음만큼 강하게 생각을 피력하지는 않았다. 지금도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이 문제를 느끼고 바꿔야 겠다고 생각한다면 모를까, 손님에 불과한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
한국에 대해서도, 내가 점점 손님이 되어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더이상 한국에 그리운 것도, 보고싶은 것도 없는 나로서는 여전히 뉴스를 보고 흥분하고 마음아파하지만 (태어나서 누군가를 이렇게 증오해본 건 처음...) 그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들에 대해 점점 거리가 느껴진다. 구경꾼 혹은 손님이 되어가는 기분..

7.
꼭 가야 할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싱가폴엔 다시 가지 않을 거 같다.
즐거웠고 재밌었고 행복한 시간이었지만, 2번이나 가본 싱가폴 보단 아직 보지못한 다른 나라들을 체험하고 싶기 때문이다.
다시 싱가폴을 가보고 싶진 않지만 이곳저곳 여행하고 싶다는 내마음에 불을 확실히 붙여준, 가슴벅찬 여행이었다. 한국에선 그리 멀지도 않고 영어가 잘 통하니 정말 강력하게 추천하는 여행지이다!



불의한 사회체제를 유지하는 힘
불의한 사회체제를 유지하는 더 근본적인 힘은 바로 인민들의 비굴과 무기력이다.
사실 제 아무리 포악하고 강한 사회체제라고 해도 대다수 인민들이 한꺼번에 거부의사를 표시하면
당장이라도 맥없이 무너지게 되어 있다.

<예수전> - 김규항, p. 181


Dr. Yoon!

기나긴 여정이 드디어 끝나고 드디어 Dr. Yoon 됬다. 박사과정 5년만이다!

논문 제출하고, 논문속에 나름 자신 없는 부분들이 있어서 디펜스 걱정을 많이 했는데, 자신도 놀랄 만큼 디펜스 말이 너무 나왔다. 교수님들이 질문하는 것들, 지적하는 분들을 받아 치고, 무사히 통과했다. 그것도 No Revision 으로!!!!! 스스로도 믿을 없는 결과이고 지도교수님도 깜짝 놀라셨다고 한다. 지도교수님이야 계속 읽으면서 피드백 주셨고 완성본 읽고 피드백 주시고, 내가 고친걸 처음부터 다시 읽고 피드백 주셔서 내가 수정하는 2번이나 거쳤으니 그렇다고 하지만, 다른 교수님들까지 그렇게 순순히 통과를 시켜 주시다니!!! 연구실 동료이자 박사과정 동기인 켈리말로는 거의 전례가 없는 경우일 거라고 했다. 자긴 디펜스 많이 다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면서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 들어본다. 보통 작은 revision 이라도 요구하시는데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거지? 교수님들이 디펜스 끝나고 보내주신 이메일들에 논문에 대한 커멘트 보단 디펜스에 대한 칭찬이 자자한걸로 봐선 아무래도 논문의 부족한 부분을 디펜스로 커버했나 보다. 결국 디펜스 라는게, 논문에서 내가 이런 식으로 논문을 것에 대해 항변하고 변호하는 거니까

 내가 우리 과에서 정말 똑똑하다고 생각했던 미국친구들중 한명이 최근에 종합시험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에게 벌어진 일들이 더더욱 믿기 어려워졌다. 내가 박사과정 2년차였을때 당시 1년차였던 친구와 수업을 들으면서, 얼마나 자신이 작게 느껴졌었는지일년 공부했다는게 부끄러울 정도였다. 그런데 친구가 종합시험에 2번이나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내가 여기까지 있었는지 믿을 수가 없어지더라.  정말 능력으로 온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부인할 수가 없다.

그리고 공간에 언급한 적은 있지만 공식적으로 적은 없는 같은데, (썼을 수도 있다. 가물가물…) 2010 가을학기부터 시카고에 있는 Roosevelt University 조교수로 일하게 됬다. 사실 이것 때문에 완전 벼락치기로 논문 거였다. 그래서 논문에 자신이 없었고

8 15일까지 박사학위 받으면 assistant professor (tenure-track), 받으면 full-time lecturer ( 경우는 박사학위 받고 나서  다시 tenure-track assistant professor 전환시켜 준다고는 했다.) 임용한다는 계약 때문에 완전 미친듯이 논문 썼었다.  박사가 되던 안되던 임용되는 거엔 변화가 없었고 나중에 조교수로 전환시켜 준다고 했지만, 시작 연봉차이가 제법 났다. 다우미 오빠가 논문 쓰기 싫을 마다 연봉차이를 생각해 보라고 만큼~ ㅋ아빠도 contract letter 보시더니 힘들더라도 논문을 마무리 해야 겠네라고 하셨다.

요즘같은 상황에서 나에게 직장을 만으로도 너무 고마운 Roosevelt U. 이지만, 그것 말고도 지금까지 나에게 해준 보면 완전 감동이다. 사람들, 아직 시작도 안한 나의 마음을 따뜻하고 황송하게 만들어준 순간들이 여러번 있었다. (혹시 나중에 시간되면 적어봐야지…)

 박사도 받았고좋은 사람들과도 함께 일하게 됬고학교 위치도 좋고 (시카고!!!)… 남편도 (당장은 아닐 있지만) 함께 있는 곳이고

모든 일이 바라는 대로 풀리니까 만큼 마음의 부담감도 커진다. 능력과 노력 이상의 것들을 계속 받으니 은행에서 빚을 기분이다. 언젠가 갚아야 하는 그런 담보도 없이 받았지만 알아서 형편것 이자도 쳐서 갚아야 하는 빚이 너무 많이 생긴 같다.

암튼, 이젠 쉬고 싶다. 이번 여름, 학회에, 학기 수업 준비에 (그래도 수업준비는 과목만 하면 된다~~~ 올레~~~), 이사까지 정신없겠지만 잠시 남은 캘리포니아에서의 생활, 즐겨봐야 겠다. 주말마다 오빠랑 이곳저곳 다니면서 이곳 구석구석을 눈과 마음에 차곡 차곡 채워서 담아가야지논문에 치여 힘들었지만 그래도 휴양지 같았던 이곳에서의 시간이 점점 끝나가는게 너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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