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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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속에서'에 해당하는 글(31)
2013.05.15   시카고 근교) Forest Park (CTA Blue Line 종점) 2
2013.04.21   어떤 한주...
2013.03.06   snow day 2
2013.03.04   Mount Prospect 도서관의 한글 책들 3
2013.02.27   펑펑 눈이 옵니다. 3
2012.08.09   전철에서... 1
2010.08.26   첫 직장에서의 10일... 1
2010.07.10   싱가폴 다녀와서...
2010.06.10   Dr. Yoon! 9
2010.04.05   지진...


시카고 근교) Forest Park (CTA Blue Line 종점)

라디오에서 들었는데, 어떤 작가가 그랬단다. 

"작가란 정말 좋은 직업이야. 글만 안쓰면...." 

교수도 정말 좋은 직업이다. 방학만 계속 된다면.... 


수업도 끝났고, 성적도 입력했고, 내일까지 완성해야 하는 faculty activity report 도 제출했다. 

드디어 영원히 오지 않을 거 같았던 2013년 여름방학이 온 것이다. 


방학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그 다음 school year 의 삶의 질이 결정된다는 걸 뼈아프게 배운 지난 3년을 생각하면, 방학을 잘 지내는 건 정말 중요하다.

여기서 방학을 잘 보낸다는 건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 

학기중에 집중하기 힘든 연구에 충분한 시간을 보내는 건 기본이고, 다음학기와 그 다음 봄학기에 있을 수업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쳐있는 내 자신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추스리고 힘을 줘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학기중에는 150%의 에너지를 쓰기 때문에 방학동안의 충전은 필수!!! 써야 하는 아티클들 때문에 겨울방학, 봄방학 자체가 없었던 지난 한해였기 때문에 이번 여름방학은 그 어느때보다 감격스럽고 감사하다. 


사람마다 충전하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나는 


- 연구/수업과 전혀 관계없는 책을 읽고

- 연구/수업과 전혀 관계없는 영화와 다큐를 보고 

- 피아노를 치고 

- 음악과 라디오를 듣고

- 남편과 산책하고

- 새로운 곳을 갈 때 


힘이 솟는다. 마치 꼬마자동차 붕붕이 꽃향기를 마실 때 처럼... 


그래서 지금 7월달에 남편과 함께 할 시애틀 까지의 기차여행이 너무너무 기다려진다. 사실 남편이 기차여행 가지고 할 때 부터, 떠날 생각만으로도 지난 학기를 버티는데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여행은 앞으로 한달도 더 남았다. 회사원인 남편이 휴가를 오래 쓰려면 연휴를 끼고 가는게 좋기 때문에 독립기념일 연휴에 맞춰 휴가를 쓰기로 한 것이다. 


그 여행을 생각만 하는 것으로도 행복해 지고 힘이 나지만, 지금 당장, 새로운 곳을 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하게 들었다. 


어떡할까.. 하다가... 

나의 CTA unlimited pass  가 생각났다.

이곳 대중교통 시스템중 하나인 CTA 버스와 전철을 무한대로 탈 수 있는 pass.

하지만 99%를 출퇴근 할때만 이용되는 나의 불쌍한 pass 를 이기회에 제대로 사용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시작한 전철역 투어!!! 






보통 Blue line 의 Cumberland 와 Washington/Monroe/Jackson 역 정도만 왔다갔다 하는데 이번 방학때, 가능한 일주일에 한군데씩 새로운 역에 가기로 다짐한 것이다. 읽어야 하는 책들이나 아티클, 랩탑, 공책 정도만 있다면 어디든지 오피스로 만들 수 있는 직업이다 보니 새로운 곳을 다니다가 지역 도서관이나 카페등에서 일하다 오겠다는 포부로 일단 Blue Line 종점인 Forest Park 쪽으로 가기로 했다.


중간에 켜기 시작해서 내가 걸어다닌 게 다 나오진 않았지만, 암튼 대강 걸어다닌 곳은 이정도 되겠고... 





우연히 발견한 Good Earth Cafe. 역에서 많이 멀지 않은 태국음식점에서 파타이랑 타이아이스티까지 먹고 배불러서 커피를 마시진 않았지만 이쁜 꽃들의 향기가 날 너무 행복하게 해 줘서, 커피 한잔 안 사고 나온게 미안할 정도였다. 



사진으로 다 표현되지 않는 그 곳의 느낌,공기, 냄새...  나중에 남편과 또 가고 싶은 곳이다.


마냥 걸었던 동네길들도 너무 이뻤고... 



평생 살 집을 언젠간 짓고 말겠다는 꿈을 가진 이후, 더 유심히 보게 되는 집들... 

물론 이렇게 큰 집을 지을일은 없겠지만.... 




Google Map 을 보고 찾아간 Thomas Jefferson Wood 의 산책길은 뭔가 더 깊은 생각으로 날 끌어가는 듯 했다. 걷는동안 사람을 단 한명도 만나지 못해 살짝 무섭긴 했지만... 






그리고 찾아간 내 사랑 도서관!!! 


전 세계의 모든 도서관을 다 가보고 싶은 소박한 꿈이 있는 나로서는, 전철역에서 멀지 않은 이 도서관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하지만 일리노이주의 다른 도서관에 비해 시설이 별로라 솔직히 좀 실망했다. 




그래도 이 곳에서 이메일 정리하고, 시애틀과 포트랜드에서 가볼만한 곳들 찾아보고... 

방학계획 및 해야 할 연구들 가닥도 잡고... 



나름 알차게 보낸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이 포스트도 여기서 쓰기 시작해서 집에서 완성중...)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니 저녁 6시... 왜 진작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에서 낯선 장소를 찾아볼 생각을 못했을까? 이렇게 하루만 보내도 내 속이 터질만큼 행복하고 감사하고 기쁜데... 


방학하니 정말좋다~ 










어떤 한주...

(FB 에 남긴글... )


이번주 시작은 좋았다.
- 월요일에 그동안 날 많이 도와준 동료교수가 인터넷에 본인 동영상 강의 올리는 걸 도와달라고 해서 그러겠다고 했는데 사이즈때문에 결국은 편집까지 하게 됬다. 시간을 꽤 썼지만 항상 도움만 받다가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나름 뿌듯... 이날 수업도 너무 좋았고...

- 화요일에 내 수업을 그동안 5과목이나 들은 학생이 너무 고맙다고 감동적인 편지랑 직접 쿠키를 만들어서 커다란 통에 담아줬다. 덕분에 동료 교수들과 조교들과 나눠먹고 (정말 맛있었음), 월요일에 동영상 편집 도와준 교수는 고맙다고 고급 와인도 가져다 주고... 오전 수업도 즐거웠고... 이날도 행복한 하루~

- 그러다가 수요일. 학교에서의 내 하루는 좋았지만 남편이 공항에서 7시간 대기하다가 결국 못타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옴.

-목요일 아침. 아침 비행기 타려고 새벽 5시에 일어난 남편 Dawoomi Hong의 놀란 목소리에 일어나보니지하가 물에 잠겼다. 비는 계속 오고.. 물은 차오고... 남편은 연착에 연착을 거듭하다 결국 플로리다 올랜도로 출장감. 난 물이 차오르는 걸 보면서 학교로 갔는데 도로가 물이 차서 평소보다 40분 정도 더 걸려서 학교 간신히 도착. 집에 오니 물은 빠졌는데 온 집안에 악취가 가득. 지하는 흙더미가 되었고, 집안에 난방도 안되고 온수도 안나옴. 남편은 밤에 올랜도에서 보스턴으로 이동해서 그곳 시간으로새벽 한시 즈음에야 호텔 도착.

-금요일. 어제있던 총격전으로 보스턴에서의 남편 회의는 취소. 다행히 호텔 위치가 시내가 아니라 나올 수 있었음. 비행기표 변경해서 지금 남편은 시카고로 날아오는 중. 난 도저히 얼음물로 샤워할 엄두가 안나서 오늘있던 학생면담 두개 취소하고 세수만 하고 두꺼운 겨울 잠바 입고 집에서 일하는 중. 지하를 어떻게든 치워야 하는데 엄두가 안난다. 착한 남편이 본인이 와서 다 할테니 내할일 하고 있으라고 하는데, 도대체 이 악취는... 어떡해야 하는지... (아무래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듯. 찾아보니 flood clean up 하는 업체들이 꽤 있다.) 이 와중에 여름 방학 2주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 밖에는 눈이 오고 있다. 살짝 내리고 있긴 하지만, 도저히 창문열고 환기 시킬 엄두가 안남... 게다가 보험회사에서 water back-up 커버리지를 따로 신청안해서 보험 혜택도 못받는다고 연락옴..

휴...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지만.. 학기말 그렇지 않아도 바쁜데 이게 무슨 난리인지... 시작은 좋았지만 끝이 엉망진창인 한주...



snow day


오늘 눈이 엄청 온다는 폭설예보에 우리 학교는 휴교령이 내려졌다. 

어제 결정된 거라, 눈이 온것도 아니고 올 예보만으로 휴교령이 내려졌다며 학교가 너무 물러진거 아니냐고 비아냥 거리던 동료교수들도 있었지만, 그런 교수들 조차 뭔가 설레어 하는게 눈이 보였다. 

결국 다 보강 해야 하는 거지만, 그래도 밀린 일들 처리할 수 있는 시간이 덤으로 주어졌다는 생각에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오늘 발표 해야 했던 학생들은 신나하겠지.. 암튼 휴강되서 숙제를 덤으로 더 내줬다. 나는야 철저한 교수~ 


제작년 엄청난 폭설에도 수업을 강행해서 결국 나로 하여금 5명 놓고 수업하게 만들고, 위험한 결정이었다고 교수들과 학생들에게 엄청나게 욕먹더니 울 학교 리더쉽이 올해는 너무 몸사리는 느낌... 지난 주 화요일은 3시 이후 수업을 캔슬해서 화요일 오후 수업들은 2주 연속 휴강이다. 그 교수들, 어찌 다 보강하려나...  (미국에서의 보강은 선택이 아닌 필수! 교수는 강의 있는 날 아플수도 없다..) 


 이 와중에도 남편은 출근했다.  이 날씨에 운전을 하는게 걱정이다. 남편 운전이야 걱정 없지만 다른 운전자들이 사고내면 대책도 없으니... 


작년 겨울에는 제법 따뜻해서 시카고를 만만하게 봤는데, 올해는 본 때를 보여주는 듯... 그래도 제법 견딜만 하다. 이정도라면, 시카고 너... 내가 접수할만한 수준이구나!    

물론 겨울과 여름중에 선택하라면 여름을 택하겠지만... 


오늘은 남편 혼자 눈치우게 하지 말고 꼭 같이 치워야지. 제작년, 남편 장기출장중에 폭설이 내려서 제설기 작동을 제대로 못해 고생했던게 자꾸 생각난다. 시차로 자고 있던 남편 깨워가며 물어보던 것도 생각나고...  올해는 미리미리 준비해야지! 



Mount Prospect 도서관의 한글 책들


요즘 토요일마다 남편이랑 동네 도서관에 가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Park Ridge Public Library 를 가장 자주 가지만 한번씩 근처의 다른 도서관도 가고 있다. 


어제 아침, 원래는 집 근처 안가본 브런치 식당에서 아침먹고 Park Ridge 도서관에 가려고 했으나 갑자기 국밥을 먹어야 겠다는 나의 변덕에 아침식사를 하는 큰집이란 한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고 (나는 북어콩나물국, 남편은 우거지 갈비탕) 거기서 가장 가까웠던 Mount Prospect Public Library 에 갔다. 


이 동네에서 가본 도서관 들 중엔 가장 맘에 들었다. 조용하고 크고 깔끔하고 사람들도 친절하고.... 너무 조용해서 남편은 별로라고 하지만, 그래도 수업시간에 사용할 수 있는 다큐들이 제법 있어서 자주 올거 같다. 


그리고 거기서 발견한 한글로 된 책들. 사진으로 찍은 것 보다 3-4배 정도 더 있었는데, 각도가 안나와서 사진은 저렇게 밖에 못 찍었다. 


아... 책보고 싶다. 수업과 상관없는.. 연구와 상관없는... 그냥 소설이나 수필, 혹은 다른 영역의 전문서적들을 보고싶다. 하지만 현실은... 새로가르치는 수업이 2개나 되는 탓에., 그리고 그 수업들을 미리 준비해 놓지 못한 탓에... 매일매일 수업준비만 간신히 하는 수준.... 3월말까지 revise 해서 내야 하는 글도 있는데... 그건 또 어쩌나... 


그래도 공부하면서 뭔가를 읽고 알아가고 가르치는게 재미있다는 거에 스스로 위로하며... 책으로 가득한 도서관을 매주 간다는 것에 감사하며... 동시에 "방학만 해봐라.. 보고싶은 책 맘 껏 읽으며 한을 풀어주마..." 라는 다짐으로 이번학기 버티고 있다. 




펑펑 눈이 옵니다.


눈이 쏟아져서 오후 수업이 캔슬됬다. 

화요일엔 오전 수업만 있던 나로서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남편 회사도 오피스가 문을 닫아서 둘다 오후에 집으로 돌아와 방에 난로 켜 놓고 일하고 있다. 


저 눈 치우려면 또 아득하지만, 그래도 평일 이시간에 남편이랑 집에서 일할 수 있다는게 그냥 마냥 행복~~~ 

(내일 수업도 캔슬되면 더 행복할텐데.....) 



전철에서...

난 전철을 타고 출퇴근 한다. 미국에 전철타고 commute 하는 직장인이 고작 4% 정도라던데, 대도시에서 일하다보니 그 4%에 속하게 됬다.

한국과 분위기는 다르지만, 시카고 전철에도 구걸하는 거지들이 있다. 뉴욕과 더불어 24시간 대중교통이 운행되는 시카고 답게 "어제부터 전철에서 못내리고 있다. 배도 고프고 차비도 필요하다" 라고 말하며 구걸하는 사람들도 있고, 홈리스인데 돈이 필요하다고 하는 사람, 돈이 아니라 먹을 걸 구걸하는 사람등을 자주는 아니지만 만날 수 있다.

지난 주, 어느 때 처럼 뭔가를 읽으며 전철을 타고 학교로 가는데 누군가 소리를 지른다.  "Does anybody have food?"

다른 때 처럼 그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하는 데 내려야 할 정류장이 다가왔다. 2 정거장 정도 남았는데 역간이 짧아 물건들을 가방에 넣고 있었다. 근데 또 어디선가 서럽게 우는 소리가 들린다. 슬픈 울음이 아니라, 서러운 울음이었다. 고개를 들고 보니 너무나도 선하게 생긴, 평생 누군가를 미워한적도 없을 것만 같이 생긴 흑인 할아버지가 고개를 숙이고 울고 있다.

나이 40이 지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던가? 옆모습만으로도 그 분이 얼마나 선하게 그동안 살아왔는지가 보였다. 왠지 저 아저씨에겐 이렇게 전철에서 음식을 구걸한게 처음인 거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전철에서 구걸하는 사람들 대부분 솔직히 험하고 무서운 느낌이 들어 항상 눈을 피하곤 했다. 몇 달전, 전철에서 구걸하던 사람에게 원하던 걸 주지 않자 손에 들고 있던 아이폰을 들고 도망가 버렸다는 동료교수의 이야기를 듣고 난후, 더더욱 그들을 피하게 됬다.

근데 지난 주에 본 할아버지의 모습은... 정말 인자한 동네 할아버지 모습이었다.  아니, 인자함을 넘어선, 바르게 살아온 인생의 흔적이 선한 모습으로 새겨진 주름을 통해 나타났다. 그리고 서럽듯 우는 모습에서 지금 너무 부끄럽고 비참함을 느끼고 있다는 게 전해졌다. 내려야 할 역은 다가오고, 그 할아버지는 아무에게도 음식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마침 가방에 바나나가 있어서 할아버지에게 주니 받자마자 나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시더니 허겁지겁 드신다. 내리면서 슬쩍 보니 벌써 다 드셨다.

내리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먹먹해 졌다. 차라리 돈을 드렸어야 했나? 돈이 아니라 음식을 원하셨으니 가지고 있는 바나나가 나았으려나? 시간이 좀더 있었으면 둘다 드렸을 텐데...

그리고 그 할아버지에게 하나님은 어디계신걸까? 그 또래 흑인 할아버지들은 기독교 인이 많다. 그리고 그 할아버지 얼굴에서, 크리스천이 분명할 거 같은, 어떤 확신같은게 들었다. 하나님을 알던 모르던, 분명히 많은 기도를 했을 거 같은 느낌.. 그런데 왜 하나님은 그 할아버지가 전철에서 저렇게 서럽게 울 수 밖에 없는 상황까지 가게 하신걸까? 내 곁에는 계신 하나님이, 왜 저 할아버지는 안 돌봐 주신거지?

이게 벌써 지난 주 일이고, 이번주도 벌써 수요일까지 왔다. 그런데 전철을 탈때마다 마치 자동플레이어처럼, 그 할아버지의 얼굴이 보이는 거 같고 우는 소리가 들리는 거 같다. 기도가 절로 나온다. 지금까지 제 기도 잘 들어주신 하나님, 제발 그 할아버지 좀 도와주세요... 제발 좀 도와주세요...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요즘은 너무 부끄럽고 죄송하고 미안하다....



첫 직장에서의 10일...

1.
학원에서 아이들도 가르쳐 봤고, 템플에 있을 때도 강의는 했었지만 그건 아르바이트였고 시간강사였을 뿐이었다. 

이제서야 정식으로 "내 직장" 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을 한국나이 31, 이곳나이로 30에 처음으로 갖게 됬다.
친구들에 비해 늦은거지만 그래도 교수라는 직업이 원래 그런거다 보니 신입교수들 중에서도 꽤 어린 편에 속하더라.

암튼 빠르다면 빠르고 늦다면 늦은 첫직장을 갖게 된지 열흘이 지났다. 
학기는 담주에 시작하지만 정식 계약은 8월 15일 부터 였고 16일부터 이틀동안 신입교수 오리엔테이션, 수요일은 우리 과 (커뮤니케이션 학과) 교수들 전체 모임이 있었으니 일한지 열흘이 된거다. (이런 것도 일이라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티 내면 안될 거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숨기기 힘들만큼, 날아갈 듯 기쁘다. 마치 내가 꼭 있어야 할 곳에 있는 듯한... 그런 기분.

2.
위키피디아에서 내가 일하는 Roosevelt University 를 찾으면 "Roosevelt University is a progressive non-profit private university with two distinct campuses in Chicago and Schaumburg." 라고 시작한다. 미국의 많은 학교들이 (특히 도시에 있는) 자신들을 진보적이라 하지만 말 뿐인 경우가 많다. Roosevelt Univ. 에 인터뷰 하러 왔을 때, 학교가 사회정의에 얼마나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지, 그걸 티칭과 연구에 접목시키려고 어떻게 노력하는지에 대한 설명 들을 때 꽤 인상적이었는데, 오리엔테이션동안의 시간들과 여러 학교사람들을 만나보니 이곳 사람들은 사회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정말로 고민하고 노력한다는 걸 알수 있었다. 이 사람들이 실천하려고 하는 사회정의는 추상적인 어떤 개념이 아닌, 학교를 운영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하는데 있어 가장 근본이 되는 중요한 축이었다. 지역사회 속에서 실천하는 사회정의 뿐 아니라, 교실안에서도 학생들의 목소리에 좀더 귀 기울이고 학생들이 이런 사회정의를 전공을 통해 실천하도록 하려는 노력들이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처음으로 참석한 교수회의도 인상적이었다. 중간에 잠깐 쉬긴 했지만 학기 첫 모임이어서 3시간 30분정도 이어진 회의였는데, 전혀 길게 느껴지질 않았다. 첫 회의여서 긴장해서였을 수도 있고 분위기 파악하느라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동안 들어왔던 정치적이고 서로 감추려 하고 파워게임의 연속인 경우가 많다던 교수회의가 아닌, 정말 사이좋은 동료들끼리 하는 회의인 거 같아서 좋았다. 또 회의 내용역시 학생들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려는 교수들의 마음들이 계속 드러나서 더 좋았었을지도...

학교에 대해 알아갈 수록, 사람들과 친해질 수록, 이곳에 대해 조금씩 배워나갈 수록, 감사한 마음, 빚진 마음이 잴 수 없을 만큼 커져 간다. 내 능력에 비해 과분한 곳에 온것만으로도 뭐라 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한데, 기대이상으로 학교가 너무좋다! 이게 꿈이 아니란게 이상할 정도로...  

3.
이제 학기가 시작되면 바빠지겠지. 다들 박사공부할 때가 좋았다고, 교수로 임용되면 그때랑 비교할 수 없을만큼 바빠진다고들 하던데, 벌써 그럴 기미가 보인다 ^^ 
시간이 지나면 지금은 이렇게 좋아보이는 동료들 중에도 날 힘들게 하는 사람이 생길 지 모른다. 하지만 뭐 어때. 그것도 삶의 한 일부분인걸...  그런것도 entertainment 라고 생각하면 휙 넘길 수 있지 않을까? 속으로 궁시렁 궁시렁 투덜되기도 하면서...

한가득 받은 명함들이 동이나서 새 명함을 신청하고, 학교에서 임용선물이라고 준 내 책상위의 작은 화분속의 bamboo가 커질 때 즈음에는 지금처럼 모든게 새롭고 신기한 단계에서 벗어나 이곳의 생활이 내 일상으로 자리잡고 익숙해 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느끼는 이 감사함, 빚진 마음은 잊지 말아야지. 그리고 이 마음들을 모아 내가 중요하다고 믿는 것들을 본격적으로 실천해 나가야 겠다.



싱가폴 다녀와서...

1.
템플대학이라고 적힌 이름표를 마지막으로 목에 건 학회였다. 즉 학생신분으로서 마지막으로 참석한 학회.
그 학회에서 Top Student Paper Award 를 받았다. 음하하하! 이렇게 마무리 하게 되서 넘 좋다. (그래.. 이건 자랑이다.)

2.
논문 끝내고 한없이 쳐질 수 있는 상황에서 적절한 시기에 다녀온 학회였다. 정신없는 도중에 가야 해서 정말 가기 싫었는데, 정말 잘 다녀왔다. 미디어리터러시 학회가 아닌, 이렇게 큰 학회에서 이정도로 학자들과 활발하게 학문적인 교류를 한 적도 없었던 거 같다. 연구에 대한 열정이 불끈! 솟아올랐다. 이 마음을 잘 이어가야 할텐데...

3.
12월에 동부에서 서부로 왔고 이제 또 중부로 이사간다. 이사가는게 이젠 많이 지겹고 한곳에 정착하고 싶었다.
시카고 가게 되서 넘 행복했고 지금도 꿈만 같다.
하지만 이번에 싱가폴에서 느낀건데,
이 넓은 세상에서 다른 곳으로 갈 여지를 남겨두지않고 한곳에서 자리잡고 산다는것에 대한 아쉬움이 살짝 생겼다.
인생은 짧고 세상은 넓은데, 단순한 여행이 아닌, 이곳저곳에서 살아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3-5년정도...
모든 곳에서 살아볼 순 없지만 그래도 그 곳들을 여행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걸까? 오빠도 나도 둘다 은퇴하면 익숙한 곳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과 새로운 곳에서 여행이 아닌, 머무는 삶으로서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 서로 막 싸울 거 같다.

4.
싱가폴에 가니,
태국에서의 시간들이 자꾸 생각났다. Leanne 도 내가 여행객이 아닌, 현지인 같다고 계속 놀라와 했는데 태국에서의 내 시간이 그곳에서 현지인 처럼 보이게 한 것 같다.
사실 지난달,17년만에 부모님이 한국으로 들어오셨다. 아빠 직장때문에 온가족이 태국으로 갔던건데 이번에도 직장때문에 한국에 들어오신거다. 처음 태국 갈 때엔 3년만 살다올줄 알았는데 이렇게 오래 살 줄이야.. 정말 이번에 회사일만 아니면  두분은 20년 채우실 뻔 했다. (사실 난 두분이 20년 넘게 사실 줄 알았다.)
솔직히 그동안 오래 살았던 태국보다 여행을 한다면 차라리 딴 나라를 가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싱가폴에 가보니 태국에 다시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난 지금도 내가 청소년 시기를 미국이나 유럽같은 곳이 아닌, 태국에서 보낸 걸 정말 감사하고 있다.
그곳에서 보고 느끼고 배운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데 큰 영향을 미쳤으니까... 세상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큰 영향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외국사는 한국 교민들과 한인교회에 대한 철저한 불신도 그 때 생겼음.)
하지만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들었는데,
95년도에 여행했던 싱가폴을 2010년에 다시 가보니 정말 많이 변한 걸 보고
2015년 지나서 죽기전에 태국 한번가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았던 태국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 곳의 공기, 바람을 느껴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2015년도의 태국은 1990년대 중반에 나에게 가르쳐준것과 다른 것들을 알려줄 거 같았다. 

5. 
템플에서 만난 대만친구이자 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 에서 교수하고 있는 Leanne 과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다.
박사과정할 때와 비교해서 교수의 삶이 훨씬 더 힘들고 고달프다는 걸 다시한번 확인했고,
정신없는 삶에 치여 죽어있던 Leanne의 연애세포를 자극시키고 깨운, 엄청난 성과도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를 이곳에 할 수는 없지만, 암튼 누군가를 알아보고 좋아하게 되고 그로 인해 설레이게 되는건 정말 행복한 일인 거 같다. 그 행복을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준거 같아 엄청 뿌듯하다!

6.
싱가폴은 영어가 통하는 나라라서 혼자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과 이런저런 깊은 이야기를 할 기회가 많았는데, 그 나라의 정치상황이나 정치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들이 솔직히 많이 불편했다. 하지만 난 그 나라에 손님으로 간 여행객일 뿐이기에 그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나눴지만 내 마음만큼 강하게 생각을 피력하지는 않았다. 지금도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이 문제를 느끼고 바꿔야 겠다고 생각한다면 모를까, 손님에 불과한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
한국에 대해서도, 내가 점점 손님이 되어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더이상 한국에 그리운 것도, 보고싶은 것도 없는 나로서는 여전히 뉴스를 보고 흥분하고 마음아파하지만 (태어나서 누군가를 이렇게 증오해본 건 처음...) 그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들에 대해 점점 거리가 느껴진다. 구경꾼 혹은 손님이 되어가는 기분..

7.
꼭 가야 할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싱가폴엔 다시 가지 않을 거 같다.
즐거웠고 재밌었고 행복한 시간이었지만, 2번이나 가본 싱가폴 보단 아직 보지못한 다른 나라들을 체험하고 싶기 때문이다.
다시 싱가폴을 가보고 싶진 않지만 이곳저곳 여행하고 싶다는 내마음에 불을 확실히 붙여준, 가슴벅찬 여행이었다. 한국에선 그리 멀지도 않고 영어가 잘 통하니 정말 강력하게 추천하는 여행지이다!



Dr. Yoon!

기나긴 여정이 드디어 끝나고 드디어 Dr. Yoon 됬다. 박사과정 5년만이다!

논문 제출하고, 논문속에 나름 자신 없는 부분들이 있어서 디펜스 걱정을 많이 했는데, 자신도 놀랄 만큼 디펜스 말이 너무 나왔다. 교수님들이 질문하는 것들, 지적하는 분들을 받아 치고, 무사히 통과했다. 그것도 No Revision 으로!!!!! 스스로도 믿을 없는 결과이고 지도교수님도 깜짝 놀라셨다고 한다. 지도교수님이야 계속 읽으면서 피드백 주셨고 완성본 읽고 피드백 주시고, 내가 고친걸 처음부터 다시 읽고 피드백 주셔서 내가 수정하는 2번이나 거쳤으니 그렇다고 하지만, 다른 교수님들까지 그렇게 순순히 통과를 시켜 주시다니!!! 연구실 동료이자 박사과정 동기인 켈리말로는 거의 전례가 없는 경우일 거라고 했다. 자긴 디펜스 많이 다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면서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 들어본다. 보통 작은 revision 이라도 요구하시는데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거지? 교수님들이 디펜스 끝나고 보내주신 이메일들에 논문에 대한 커멘트 보단 디펜스에 대한 칭찬이 자자한걸로 봐선 아무래도 논문의 부족한 부분을 디펜스로 커버했나 보다. 결국 디펜스 라는게, 논문에서 내가 이런 식으로 논문을 것에 대해 항변하고 변호하는 거니까

 내가 우리 과에서 정말 똑똑하다고 생각했던 미국친구들중 한명이 최근에 종합시험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에게 벌어진 일들이 더더욱 믿기 어려워졌다. 내가 박사과정 2년차였을때 당시 1년차였던 친구와 수업을 들으면서, 얼마나 자신이 작게 느껴졌었는지일년 공부했다는게 부끄러울 정도였다. 그런데 친구가 종합시험에 2번이나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내가 여기까지 있었는지 믿을 수가 없어지더라.  정말 능력으로 온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부인할 수가 없다.

그리고 공간에 언급한 적은 있지만 공식적으로 적은 없는 같은데, (썼을 수도 있다. 가물가물…) 2010 가을학기부터 시카고에 있는 Roosevelt University 조교수로 일하게 됬다. 사실 이것 때문에 완전 벼락치기로 논문 거였다. 그래서 논문에 자신이 없었고

8 15일까지 박사학위 받으면 assistant professor (tenure-track), 받으면 full-time lecturer ( 경우는 박사학위 받고 나서  다시 tenure-track assistant professor 전환시켜 준다고는 했다.) 임용한다는 계약 때문에 완전 미친듯이 논문 썼었다.  박사가 되던 안되던 임용되는 거엔 변화가 없었고 나중에 조교수로 전환시켜 준다고 했지만, 시작 연봉차이가 제법 났다. 다우미 오빠가 논문 쓰기 싫을 마다 연봉차이를 생각해 보라고 만큼~ ㅋ아빠도 contract letter 보시더니 힘들더라도 논문을 마무리 해야 겠네라고 하셨다.

요즘같은 상황에서 나에게 직장을 만으로도 너무 고마운 Roosevelt U. 이지만, 그것 말고도 지금까지 나에게 해준 보면 완전 감동이다. 사람들, 아직 시작도 안한 나의 마음을 따뜻하고 황송하게 만들어준 순간들이 여러번 있었다. (혹시 나중에 시간되면 적어봐야지…)

 박사도 받았고좋은 사람들과도 함께 일하게 됬고학교 위치도 좋고 (시카고!!!)… 남편도 (당장은 아닐 있지만) 함께 있는 곳이고

모든 일이 바라는 대로 풀리니까 만큼 마음의 부담감도 커진다. 능력과 노력 이상의 것들을 계속 받으니 은행에서 빚을 기분이다. 언젠가 갚아야 하는 그런 담보도 없이 받았지만 알아서 형편것 이자도 쳐서 갚아야 하는 빚이 너무 많이 생긴 같다.

암튼, 이젠 쉬고 싶다. 이번 여름, 학회에, 학기 수업 준비에 (그래도 수업준비는 과목만 하면 된다~~~ 올레~~~), 이사까지 정신없겠지만 잠시 남은 캘리포니아에서의 생활, 즐겨봐야 겠다. 주말마다 오빠랑 이곳저곳 다니면서 이곳 구석구석을 눈과 마음에 차곡 차곡 채워서 담아가야지논문에 치여 힘들었지만 그래도 휴양지 같았던 이곳에서의 시간이 점점 끝나가는게 너무 아쉽다.




지진...

방금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진을 느꼈다. 멕시코에서 6.9도의 지진이 났다더니 그게 여기까지 느껴진거란다. 멕시코에서 큰일은 없는 거겠지? 제발...

돈 20불 아끼겠다고 아파트 보험들때 지진항목은 포함시키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큰 실수를 한 듯... 잠깐 살거란 생각에 최대한 싸게 한다고 그런건데 내가 정신이 나갔지... 캘리포니아 사는 애가 뭔 정신으로 지진항목을 보험에서 빼다니...
지금 바꾸기엔 늦은 거 같고... 일년 약정이니 시카고 가기전에 보험을 또 들 필요는 없을테고...

따뜻하고 살기 편한 이곳을 떠나야 하는게 아쉽고 오빠에게도 미안하지만, 시카고 가면 좋은 또 다른 이유가 생겨 좋다.

그런데 아깐 정말 너무 놀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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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 대한 욕구는 삶에 대한 애정이 있을 때만 가능한 것... 남기고 싶은 순간들이 많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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